황희선생묘
소개
조선 시대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던 방촌 황희(黃喜, 1363∼1452) 선생의 묘소이다. 조선 초기 국가 기반을 확립하는 데에 큰 업적을 남겼고, 4군 6진의 개척, 문예진흥 등을 지휘하여 세종성세(世宗盛世)에 공헌하였다. 묘역은 부인 청주양씨(淸州楊氏)와 합장된 하나의 봉분 형태이다. 봉분은 커다란 직사각형태에 앞부분에 ‘ㄷ’자 모양의 둘레석을 하단에 쌓은 형태로 조선초기의 독특한 묘제이다. 묘역은 계단식으로 3단으로 나누고 계체석(階砌石 ; 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으로 구분하였는데, 고려의 묘제를 계승한 조선 초기의 묘제이다.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 묘표가 있는데, 1824년에 건립한 것이다. 장명등은 머릿돌이 몸돌에 비해 큰 조선 초기의 장명등 형태를 잘 보여준다. 화창은 앞뒤로만 凹자형으로 뚫었으며, 원수(圓首)는 2단의 구조를 보이는 전형적인 15세기의 장명등이다. 시자석인은 황희 묘의 대표적인 석물로 상징된다. 두 손을 모아서 공손하게 서 있는 자세이며, 소모자를 쓰고, 옷은 방령포를 입은 형태이다. 이런 도상은 희귀성이 높아 매우 중요하다. 하단에는 문석인 1쌍을 배치하였는데,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이다. 머리가 크고 입주변의 팔자주름을 깊게 표현한 조선초기의 양식이다. 신도비는 규수방부형(圭首方趺形; 좌우 모서리의 각을 죽인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형태다.
이 묘역은 조선 초기의 독특한 묘제와 석물로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