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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합천_해인사_백련암_풍계집_목판

합천 해인사 백련암 풍계집 목판

합천 해인사 백련암 풍계집 목판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2017년 01월 05일 지정)
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찰본
시대 조선후기
소유 대***
관리 대***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길 118-116 (가야면) 해인사 백련암

소개

명찰의 본관과 속성은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자(字)는 취월(醉月), 호(號)는 풍계(楓溪)이다. 부친 박승효(朴承孝)와 모친(母親) 김씨(金氏) 사이에서 1640년 6월 초3일에 태어났으며, 11세에 강원도 청평사(淸平寺) 양신암(養神菴)으로 출가하여 환적당(幻寂堂) 의천대사(義天大師)에게서 머리를 깎고, 13세에 스승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 편양(鞭羊)의 적사(嫡嗣)인 풍담당(楓潭堂) 의심대사(義諶大師) 문하에서 10여 년간 경론(經論)을 익혔다. 의심대사가 입적한 후에는 법형(法兄)인 상봉당(霜峰堂) 정원대사(淨源大師), 청봉당(晴峰堂) 수영대사(首英大師) 등에게서 배웠다. 이후 치악산(雉岳山), 소백산(小白山), 희양산(曦陽山) 등을 주유하며 유완록(遊翫錄) 1권을 남겼다. 1704년에 가야산 백련암(白蓮菴)에 들어갔으며, 1708년 6월에 문인들을 불러모아 임종을 알리고 다음날 임종게(臨終偈, ‘幻海浮沈度幾春 棚頭又作弄傀人’)를 읊은 후 합장하고 좌정한 상태로 입적하였다 보제등계대사행장(普濟登階大師行狀)」에 따르면 1708년에 명찰(明詧)이 입적한 후 법제(法弟) 연수(延壽) ․ 홍해(洪海), 손제(孫弟) 인식(印湜) ․ 인원(印元), 문제(門弟) 일섬(日暹) ․도형(道浻) ․ 도암(道菴) 등과 행장(行狀)을 쓴 문일(聞佾)이 유고(遺稿) 7편을 모았는데, 재력이 부족하여 3편만 판각하고 후일을 기약하였다. 정확한 판간연대는 알 수 없지만 문일의 부탁으로 농암거사(聾庵居士)가 서문(序文)을 쓴 연도가 1711년(숙종 37)인 것으로 볼 때 1711년 전후로 판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풍계집? 책판은 조선후기인 18세기 초반에 판각된 것으로 책판의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楓溪集?의 저자는 명찰(明詧)로 그는 사대부 및 여러 인사와 교유하며 시문을 수창하고 전국의 산수를 거닐며 시문을 짓기도 하였다. 명찰이 입적 후 그의 제자인 문일이 스승의 유고를 모아 18세기 초반에 판각을 하게 되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풍계집?의 책판은 해인사 백련암 소장 책판이 유일하다. 다만 하권 5-6장의 책판이 일실되어 없는데, 풍계집 간행본이 계명대, 국회도서관, 동국대, 영남대, 중앙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전하고 있다 본 책판을 통해 조선후기 승려의 시문집 간행과정에 있어서 주변의 사찰에서 시주가 이루어져 간행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또한 조선후기 승려와 사대부 등의 교유양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자료로써의 가치가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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