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한음이덕형선생묘및신도비

한음이덕형선생묘및신도비

한음이덕형선생묘및신도비
종목 시도기념물 (1985년 09월 20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시대
소유 광주이씨좌의정공파종중
관리 광주이씨좌의정공파종중
소재지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82번지

소개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 선생은 임진왜란 때 정주까지 왕을 호종했고, 청원사(請援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파병을 성사시켰다. 광해군 때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삼사(三司)에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과 폐모론을 들고 나오자, 이항복과 함께 이를 적극 반대했다. 이에 삼사가 모두 이덕형을 모함하며 처형을 주장했으나, 광해군이 관직을 삭탈해 이를 수습하였다. 이덕형선생 묘는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와 합장(合葬) 단분(單墳)이다. 봉분 앞에 원수방부(圓首方趺;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묘표, 혼유석, 석상, 향로석이 차례로 설치되어 있다. 그 좌우로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등이 건립되어 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이수방부(螭首方趺; 용이 조각된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의 신도비는 조경(趙絅)이 비문을 지었으며, 외증손 오시복(吳始復)이 글씨를 쓰고, 외증손 정규상(鄭奎祥)이 전자(篆字)를 썼다. 건립한 시기는 비석의 측면에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다. 다만 비문의 글씨를 쓴 오시복의 벼슬이 행(行) 이조판서로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오시복이 이조판서로 재직하던 1692~1693년 사이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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