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추연우성전묘역_우하영묘역포함
추연우성전묘역(우하영묘역포함)
소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우성전(禹性傳, 1542~1593)과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우하영(1741~1812)의 묘역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식량을 조달하여 난민을 구제하였다. 우하영은 국가·사회의 개혁방안을 담은 『천일록(千一錄)』을 저술하였다.
우성전 묘역은 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와 함께 매장된 쌍분(雙墳; 두개의 봉분)의 형태이다. 묘제(墓制)는 의병장의 묘역답게 검소한 제도와 석물로 구성되어 있다. 봉분 앞으로는 묘표, 상석, 향로석이 있고, 하단에는 망주석만 1쌍이 있고, 석인은 조성하지 않았다. 묘표는 일반적인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고 17세기의 형식을 보인다. 묘역의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석)를 세웠는데 1878년(고종 15)에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성호 이익(李瀷)이 지었다. 우하영 묘역은 우성전 묘와 직선거리로 약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은 부인 평산신씨와 함께 매장된 원형의 쌍분 형태이다. 묘역에는 일체의 석물이 없어, 검소한 실학자의 묘제를 잘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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