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최명길_묘소

청주 최명길 묘소

청주 최명길 묘소
종목 시도기념물 (1984년 12월 31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시대
소유 전주최씨종중
관리 전주최씨종중
소재지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소개

조선 중기 문신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묘소이다.

최명길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이다. 일찍이 이항복李恒福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5년(선조 38)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1614년(광해군 6) 폐모廢母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되었으며,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이 되어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청나라와의 강화講和가 불가피함을 역설하여 이로부터 강화가 논의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일찍부터 척화론斥和論 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주화론主和論을 펴 극렬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결국 정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어져 다음 해 정월 인조가 직접 나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다. 청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 그는 우의정으로서 흩어진 정사를 수습하는 데 힘을 쏟았다. 1640년(인조 18) 사임했다가 1642년 가을에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이후 조선의 반청反淸적인 움직임이 알려져 청나라에 불려가 있다가 1645년(인조 23)에 귀국하여 계속 인조를 보필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성리학과 문장에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으며, 저서로 『지천집遲川集』과 『지천주차遲川奏箚』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최명길의 묘역 안에는 3기의 봉분이 있는데 이 중, 중앙에 위치해 있는 것이 최명길의 묘소이다. 봉분 주위에 높이 20〜50㎝의 화강암으로 된 호석護石을 둘렀고, 묘 앞에 상석床石과 묘표墓表가 있다. 상석의 규모는 170×96×29㎝이며, 묘표의 규모는 54×134×15㎝이다. 묘표는 남구만南九萬이 글씨를 썼다. 상석 앞에 배열된 망주석과 문인석은 화강석으로 높이 160㎝ 정도이며 약간 마모되었다.

묘 앞 500m 지점에는 숙종 때 세운 최명길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의 규모는 비신 106×268×36㎝이고 전체높이 4m의 대형비석이다. 최명길 신도비는 묘소와는 별도로 충청북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에 보호각을 세웠다.

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최명길_묘소.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저자 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