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최대성 정려 현판 일괄
| 진주 최대성 정려 현판 일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24년 02월 29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간본 |
| 시대 | 조선후기~근대 |
| 소유 | 경*** |
| 관리 | 경*** |
|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산로 1817 (미천면) |
소개
최대성(崔大晟, 1553~1598)은 조선중기 전라남도 보성 출신의 무신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최계전(崔繼田)이고, 아버지는 첨정(僉正) 최한손(崔漢孫)이며, 어머니는 광주 이씨(廣州李氏) 이유정(李有廷)의 따님이다. 1585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훈련원정(訓鍊院正)으로 이순신 장군을 따라 남해의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나 1598년 6월에 전라남도 보성의 안치전투(鴈峙戰鬪)에서 전사하였다. 도내 사림(士林)과 후손들의 거듭된 상서로 전사(戰死) 후 156년만인 1752년(영조 28, 임신) 4월에 정려가 내려져 보성에 정려각이 세워졌다. 1890년(고종 27, 경인)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정려각은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목인 미천면 안간리 내인마을에 있다. 정려 현판의 크기는 세로 40㎝에 가로 105㎝이며, 1752년(영조 28) 4월 29일에 내려졌다. 정려기 현판의 크기는 세로 36㎝에 가로 85㎝이다. 기문(記文)은 한림학사 이의철(李宜哲, 1703~1778)이 짓고, 보성군수 이규서(李奎書, 1864년 부임)가 썼다. 기문에는 최대성의 가계, 임란시기 전공, 정려가 내려지는 과정 등이 언급되어 있다.
정려 이건기 현판의 크기는 세로 35㎝에 가로 70㎝이다. 1890년에 11~2세손들이 중심이 되어 전라남도 보성으로부터 현재 위치로 이건하게 된 경위를 후손 정수(正守)가 기록해 놓았다.
중수 모와기(重修募瓦記) 현판의 크기는 세로 32㎝에 가로 77.5㎝이다. 1917년(崇禎紀元後五丁巳)에 보수 공사를 한 것을 12세손 정수(正秀)가 기록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