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_재령이씨․진주강씨_정려각_현판_일괄
진주 재령이씨․진주강씨 정려각 현판 일괄
소개
본 정려각에는 ‘하응림(河應霖, 1718~1742)의 처 재령이씨’와 ‘하국보(河國寶)의 처 진주강씨’의 정려문 현판, 정조의 어필이라 전하는 ‘일신삼행(一身三行)’의 현판 총 3점이 걸려 있다.
재령이씨(1716*~1784)는 남편이 25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43년 동안 시부모를 잘 봉양하고, 양자를 들여 잘 양육하여 후사를 잇도록 하였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남편의 기일에 음독하니, 관찰사가 1788년에 장계를 올리고 아들 학호(學浩)가 글을 올려 마침내 ‘효․열․의’의 명분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문은 1790년 2월에 당대의 문장가였던 정범조(丁範祖)가 짓고, 글씨로 이름났던 강세황이 썼다. *보첩에는 ‘갑오 1714년’으로 되어 있어 차이를 보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정려문을 따른다.
정려각 바깥 정면에는 ‘일신삼행’의 현판이 있다. 정범조의 ?해좌집(海左集)? 권38에 「서이씨정려사실(書李氏㫌閭事實)」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의 말미에 정조가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에게 절개를 지켰고 자식에게 의로웠으니, 예전에도 드문 일이다.’라 말씀하시고, 정려를 명하셨다.[聖敎曰 孝於舅 烈於夫 義於子 一身三行 曾所罕聞 命㫌閭]”라고 서술되어 있다.
진주강씨는 강응태(姜應台)의 딸로 임진왜란 때 왜구의 강폭한 행위에 절개를 지키려다 죽게 되어‘절부(節婦)’로 정려되었다. 1617년(광해군 9)에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권5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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