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홍용한 갱화시첩
소개
[ 1첩 ]
정조 16년(1792) 9월 12일(무신), 정조가 광릉(光陵)에 행차하는 길에 외종조인 홍용한(洪龍漢)의 집에 들러 어찰과 어제시 1수를 주자 홍용한과 그의 아들, 조카들이 이에 화답하여 지은 시를 편집한 시첩이다. 시첩의 제일 앞에는 “장천종자(長川從者)”를 수신자로 하는 정조의 어찰과 칠언절구(28자) 시 1수가 있고, 그 다음에 홍용한이 작성한 서문과 어제시에 차운한 시 1수, 정조의 어제시 28자를 각각 운자로 사용한 시 28수가 있다. 그 다음에 홍용한의 아들인 홍낙수(洪樂受)와 홍낙유(洪樂有), 종자(從子, 조카)인 홍낙신(洪樂信), 홍낙임(洪樂任), 홍낙윤(洪樂倫), 종손(從孫)인 홍취영(洪就榮)이 어제시에 차운한 시 각 1수(총 6수)가 있다. 시첩의 첫머리에 수록된 정조의 어찰과 어제시는 다른 사람이 필사한 것이며, 홍용한이 작성한 서문과 시, 그의 아들과 조카들이 작성한 시는 각자의 필체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시첩의 장황과 제첨은 1806년 혜경궁의 지시에 따라 풍산홍씨 가문이 소장한 정조의 어필들을 일괄해서 정리할 때 장황 방식과 같다.
[ 2첩 ]
정조가 정조 18년(1794) 5월 4일에 회갑을 맞은 외종조 홍용한(洪龍漢)에게 회갑을 축하하는 어찰과 어제시 1수를 보내자 홍용한과 그의 아들, 조카, 손자, 증손들이 이에 화답하여 지은 시를 편집한 시첩. 시첩의 제일 앞에는 “장천집사(長川執事)”를 수신자로 하는 정조의 어찰과 집안 인물들이 화답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글과 함께 “壽外從大夫長洲公回甲(외종대부 장주 홍용한의 회갑을 축수하다)”이란 제목의 칠언율시 1수가 있다. 그 다음에 홍용한이 작성한 서문과 어제시에 차운한 시 1수, 홍준한(洪駿漢)이 작성한 서문과 차운한 시 1수, 아들 홍낙수(洪樂受)와 홍낙유(洪樂有), 손자 홍직영(洪稷榮), 종자(從子, 조카)인 홍낙신(洪樂信), 홍낙임(洪樂任), 홍낙윤(洪樂倫), 홍낙선(洪樂宣), 홍낙관(洪樂寬), 종손(從孫)인 홍수영(洪守榮), 홍취영(洪就榮), 홍후영(洪後榮), 홍서영(洪緖榮), 홍철영(洪徹榮), 홍위영(洪緯榮), 홍기영(洪紀榮), 홍노영(洪魯榮), 종증손(從曾孫)인 홍재주(洪載周)가 어제시에 차운한 시 각 1수(총 19수)가 있다. 시첩의 첫머리에 수록된 정조의 어찰과 어제시는 다른 사람이 필사한 것이며, 홍용한과 홍준한이 작성한 서문과 시, 그의 자손들이 작성한 시는 각자의 필체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시첩의 장황과 제첨은 1806년 혜경궁의 지시에 따라 풍산홍씨 가문이 소장한 정조의 어필을 일괄해서 정리할 때 장황 방식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