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광노
소개
<인광노(引光奴)>는 조선시대 긴급 등촉(燈燭)의 하나이다. 조사대상 인광노는 처음 제작할 때부터 소모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재질 역시 목제여서 보존환경이 완벽하지 않으면 보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인광노는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 소장 인광노와 조사대상 자료 등 2건에 불과하다. 특히 외국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현재로서는 이 자료가 유일하다.
인광노의 제작 시기를 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성냥의 국내 유입 시가와 대중화 시기를 고려할 때 조사대상 인광노는 1900년대 중반 정도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광노의 형태는 기산풍속화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 소장품이나 조사대상 인광노의 형태는 서로 상이하다. 기산풍속화에 등장하는 인광노는 얇게 깎을 때 한쪽 끝은 완전히 깎지 않아 다발처럼 만들어 한 덩어리 형태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의 인광노와 이 <인광노(引光奴)>는 얇게 깎은 편이 하나씩 분리되어 있어 이를 짚으로 묶어서 다발을 만들었다. 즉,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나무 편을 규칙 없이 묶어서 한 다발로 하였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의 인광노는 20매 정도의 목편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었는데, 6다발이다. 이 <인광노(引光奴)>는 4매, 6매, 10매 정도의 목편을 각각 구분하여 묶고 이를 다시 꾸러미 엮듯이 엮어 한 다발로 만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제작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관 과정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산풍속화의 다발 모양은 하나씩 뜯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존하는 두 인광노는 묶음에서 한 장씩 뽑아서 사용하는 형태이다.
보존 상태는 외형상 양호한 것처럼 보이나 가장자리가 부분적으로 열화되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고, 나무의 결 역시 확인하기 어렵다. 이를 묶은 짚은 부분적으로 탈락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한쪽 끝에 칠한 황은 대부분 탈락이 되어 일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이고 이를 보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소장 연유가 확실하지 않아 언제부터 보존되어 왔는지 확실하지 않아 향후 보존 방법을 강구해야 할 형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