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장군묘
소개
조선 인조와 효종, 현종연간의 무신인 매죽헌(梅竹軒) 이완(李浣, 1602∼1674) 장군의 묘이다. 병자호란에 출전하여 정방산성(正方山城)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이후 훈련대장과 병조판서의 임무를 맡아서 북벌을 준비하였다. ‘묘’는 부인 서산 정씨(瑞山鄭氏)와 합장한 하나의 봉분 형태이다. 묘제(墓制)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석물은 옛 것과 새 것이 혼합되어 있다.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가 있는데, 규모가 크다. 이수방부형(螭首方趺形; 용 문양을 장식한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고, 비문은 송시열이 지었다. 17세기 후반의 양식을 보인다. 망주석은 몸돌이 두꺼워 안정적이고, 귀(耳; 몸돌부분에 조각된 손잡이 형태의 조형) 문양이 남아있다. 특히 귀 문양은 X자로 꼬인 매듭문양을 조각하여 독특하다. 문석인은 양관조복형(梁冠朝服形; 머리에는 양관을 쓰고, 조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으로 17세기 후반의 무게감이 있고 유려한 장식의 석인상이다.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으며, 꽃잎 같은 구름문양과 패옥 등은 대담하고 명확하여, 17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수준높은 조각이다. 신도비는 이수귀부형(螭首龜趺形; 용문양을 장식한 머릿돌과 거북모양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매우 당당한 형태이다. 받침돌은 거북이가 아니라 용두형으로 조각되어 더욱 용맹한 모습이고, 앞으로 돌출된 두 눈과 구불구불한 머리와 수염표현은 강렬하다. 제작연대는 1688년(숙종 14)이고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민정중이 글씨를 썼다.
이 묘역은 17세기의 표준이 될 수 있는 묘제와 원형의 석물을 보유하고 있어 가치 높은 문화유산이다. 특히 용두형 받침돌의 신도비는 매우 주목되는데, 학술적 가치가 높고 조각의 수준이 매우 우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