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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이세화선생묘

이세화선생묘

이세화선생묘
종목 시도기념물 (1981년 07월 16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시대
소유 부***
관리 부***
소재지 경기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89-4번지

소개

조선 숙종 때 문신 쌍백당(雙栢堂) 이세화(李世華, 1630~1701) 선생의 묘소이다. 이세화는 인현 왕후(仁顯王后) 폐비설을 듣고 오두인(吳斗寅)과 함께 반대 상소를 올렸다. 정주로 유배를 가다가 풀려 파주로 은거했으며, 인현 왕후 복위도감제조(復位都監提調)로 다시 벼슬에 올랐다. 묘소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인 설씨(薛氏, 1627~1670)와 함께 묻혀있다. 봉분은 좌우 2기가 있으며, 두 봉분 사이에 묘표(墓表), 석상(石床), 향로석(香爐石) 등이 놓여 있다. 묘표는 원수방부(圓首方趺;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위에 원수형(圓首形) 비신(碑身)이 꽂혀 있다. 비문은 ‘충신’이라는 말로 이세화의 행적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봉분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이 건립되어 있다. 묘역 하단에는 1708년에 건립된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개석방부(蓋石方趺; 지붕돌과 네모난 비석 받침) 형식이다. 신도비의 비문은 남구만(南九萬)이 짓고, 오태주(吳泰周)가 썼으며, 전서(篆書)는 최석정(崔錫鼎)이 썼다. 명필이었던 오태주는 친인척 이외의 비문을 쓰지 않았으나 그 아버지 오두인이 이세화와 함께 상소 올렸다가 죽어 그 인연으로 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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