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오윤겸선생묘
오윤겸선생묘
소개
추탄(秋灘) 오윤겸(吳允謙, 1559∼1636) 선생은 본관이 해주(海州)이며, 조선 중기 사대부이다. 선생은 1582년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철(鄭澈)의 종사관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오윤겸 선생의 묘소는 부인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었다. 봉분 앞에는 석상과 향로석이 놓여 있으며, 봉분 북쪽에 묘갈(墓碣)이 건립되어 있다. 묘역 좌우로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건립되어 있다. 1647년에 건립된 원수방부(圓首方趺;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 형태의 묘갈은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쓴 것이다. 묘갈의 내용에 따르면 선생은 ‘나라에 공이 없고, 몸에는 덕이 없으니, 죽어 장사지내도 비석을 세우지 말고, 시호를 청하지 말라’고 했으나 전하지 않는 것은 인(仁)이 아니므로 작은 묘갈에 기록한다고 했다. 비신 하단 앞뒤에는 불규칙하게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글씨를 새기기 전 비석 받침에 들어갈 부분에 연습해 본 것이다. 현재는 밖으로 나와 있으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대한민국/국가유산/오윤겸선생묘.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저자 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