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영창대군묘
영창대군묘
소개
영창 대군(永昌大君) 이의(李㼁, 1606~1614)는 선조(宣祖)의 유일한 대군이다. 모후는 인목 왕후(仁穆王后)이다. 영창 대군은 선조의 사랑을 받았으나 어려서 선조가 승하했으며, 소북파(小北派) 유영경(柳永慶) 등이 지지했다. 광해군(光海君)과 이이첨(李爾瞻) 등은 이들을 미워하여 ‘7서(庶)의 옥(獄)’이라는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 옥사는 유영경 등이 영창 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으며, 인목왕후의 부친 김제남(金悌男)도 관계되었다며 많은 사람을 처형한 무옥(誣獄; 억울한 옥사)이었다. 이로 인해 영창 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 울타리를 둘러 유배함)되었고, 9살의 나이로 강화부사 정항(鄭沆)에게 살해당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영창 대군은 복권되고, 예에 맞게 안장(安葬)되었다.
봉분은 현대에 호석(護石)을 둘렀으며, 그 앞에 묘표, 혼유석, 석상, 향로석을 놓고 좌우에 동자석(童子石)과 문인석, 망주석을 설치했다. 묘표는 이수방부(螭首方趺; 용이 조각된 비신 머리와 네모난 비좌)형태이며, 이수는 앞뒤로 여의주(如意珠)를 쥐고 있는 용을 한 마리씩 조각했다. 석상(石床)은 아래에 고석(鼓石)으로 받치고 있으며, 4각의 향로석(香爐石)은 매우 특별한 형태이다. 봉분 옆의 신도비는 1990년에 건립되었다. 영창대군 묘 석물들은 17세기 전반 왕실 묘소 석물의 기준작이 되는 우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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