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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일정씨_판결사공파‧승지공파_동춘_묘역

영일정씨 판결사공파‧승지공파 동춘 묘역

영일정씨 판결사공파‧승지공파 동춘 묘역
종목 시도기념물 (2020년 03월 02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시대 15세기 후반
소유 영***
관리 영***
소재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소개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의 영일정씨의 판결사공·승지공파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 전인 1607년(선조 40)에 승지공(承旨公) 정여온(鄭如溫. 1570~1632)이 부친 정제(鄭濟. 1540~1607)의 묘소를 연수구 청량산 밑[일명 능어리(陵御里)]에 모신 후부터라고 전해 온다. 이후 후손들이 청량산 동쪽(먼우금) 지역과 봉재산 기슭(동막, 척전마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10대(代) 4백여 년 이상 인천에서 가계를 이어온 대표적 종중(宗中)이다.

○ 인천부읍지(仁川府邑誌)(1842년, 1871년, 1899년 간행)의 총묘(塚墓: 무덤) 조항에 등재된 영일정씨는 강원감사 정시성(鄭始成. 1608~1678), 판돈녕부사 정수기(鄭壽期. 1664~1752), 우의정 정우량(鄭羽良. 1692~1754), 좌의정 정휘량(鄭翬良. 1706~1762), 참판 정원달(鄭遠達. 1735~1805) 등이다. 또한 인물 조항에는 효자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가 내려진 정세빈(鄭世賓)이 등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제주목사를 지낸 정석빈(鄭碩賓), 영조의 사위였던 정치달(鄭致達: 정우량의 아들) 등도 영일정씨 가문을 인천의 명문세족으로 자리 잡게 한 주요 인물들이다.

○ 묘역 내에는 17기의 묘소(일부 묘소 제외)와 묘비, 문인석(文人石: 무덤 앞에 문관 형상으로 만들어진 돌), 석양(石羊: 죽은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돌짐승), 망주석(望柱石: 무덤 앞의 양옆에 하나씩 세우는 돌로 만든 기둥), 상석(床石: 무덤의 봉분 앞에 설치해 놓은 석물. 일명 상돌) 등 석물(石物) 66점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 석물은 조선 중기~후기 미술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묘제 양식의 기본 상식을 알 수 있고, 당시의 문화와 생활의 한 부분을 엿 볼 수 있어 문화유산적 가치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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