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중화사_지장시왕도

영동 중화사 지장시왕도

영동 중화사 지장시왕도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2024년 11월 08일 지정)
분류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보살도
시대 1690년
소유 대***
관리 대***
소재지 충청북도 영동군

소개

충북 영동군 천마산(天摩山)에 위치한 중화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절은 현재의 자리가 아닌 남각산(南角山) 기슭에 있었다고 하며 ‘용화사(龍華寺)’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조선 전기 간행한 지리지에 용화사의 사명이 등장하는데 이후 용화사는 폐사되고 명종대에 서산휴정이 지금의 위치로 사찰을 중건하고 중화사(中華寺)로 개명하였다고 전한다. 서산휴정의 중건 이후 중화사는 정유재란 때 전소되어 80여 년 동안폐허로 남아있다가 167년(숙종 3)에 중건하여 사세를 갖추었다. 이후 1797년(정조 21), 1857년(철종 8) 당우를 중수하고, 근현대를 거쳐 여러 차례의 화재에 중창과 중건을 거듭하며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 말~일제강점기의 중화사 현황은 192년 오타라 도시카케(大原利武)가 촬영한 유리건판을 통해 전체 가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사진을 통해 1951년에 소실된 청법루와 2013년 대웅전 화재로 함께 소실된 삼존불상의 실재 모습만이 아니라 지금은 소재가 모호한 후불도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화면 구성을 살펴보면 <중화사 지장시왕도>는 화면 중앙에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합장한 자세로 서 있다. 지장삼존 좌측(향우)에는 시왕 중 홀수에 속하는 1, 3, 5, 7, 9대왕, 우측(향좌)에는 짝수의 2, 4, 6, 8, 10대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화면 상단에는 판관, 사자, 장군, 우두와 마두옥졸, 천악동자가 있다. 지장보살을 비롯한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및 명부권속 등의 구성과 표현, 특히 화면 상단의 하늘과 하늘꽃 표현 등은 17세기와 18세기 초에 조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장시왕도>(1673, 소장품번호 구8602), <보림선원 소장 지장시왕도>(1676)부터 <만불선원 소장 지장시왕도>(1706)으로 이어지는 형식을 하고 있다. 이처럼 형식과 표현에 있어서는 <중화사 지장시왕도>는 분명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개채한 부위는 지장보살의 신체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의복과 배경 위주이며, 백·황·적·청·녹·주황·연청색을 덧칠하였음을 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다행인 점은 이 중수의 범위가 이전 화면을 변형하거나 채색을 전면을 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존상의 얼굴이나 신체, 복식의 옷주름과 문양, 대좌의 모양새와 문양 등을 원형에 가깝게 따라 그리고 손상되지 않는 부분은 원형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윤곽선과 등장 권속의 상호는 거의 손대지 않아 17세기 말 필선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의복의 목깃이나 소매깃에는 꽃잎은 금칠로 메우고 꽃술은 간략하게 묘사한 만개한 꽃봉우리를 겹치지 않게 교차로 배치하여 장식한 것이 특징인데, 이 표현 방법 역시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17세기 말 18세기 초 제작한 불화에 많이 등장하여 시대적 특징을 보이는 요소이다. 이처럼 <중화사 지장시왕도>는 1690년의 모습을 최대한 바꾸지 않는 선에서 개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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