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여주_고달사지_원종대사탑비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종목 보물 (1963년 01월 21일 지정)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시대 고려 광종 26년( 975)
소유 국유
관리 여주시,국립중앙박물관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9-3번지

소개

원종대사는 이름이 찬유(璨幽)로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 90세(승랍 69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여러 국왕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불교 발전에 공로가 높았다. 광종은 원종대사가 입적하자 신하를 보내 조문하고, 시호를 ‘원종(元宗)’, 탑호를 ‘혜진(惠眞)’이라 내리었다. 이 탑비는 원종대사가 입적하자 그를 기리고, 살아생전의 행적을 비문으로 새겨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다.

받침돌의 거북 머리는 목이 짧아 움츠린 형상으로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빨을 악물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매우 강인한 모습이다. 다리는 마치 땅을 밀치고 나가려는 듯 발가락과 발톱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등에는 3중의 6각형 문양을 정연하게 조각하였으며, 가운데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문양 위에 연꽃이 장식된 비좌를 마련하였다. 머릿돌은 연꽃 받침대 위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용을 구름 속에 새겨 영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상단부에는 큼직한 보주를 끼울 수 있도록 구멍이 있고, 앞면에는 사각형 구획을 마련하여 주인공을 알 수 있도록 글자를 새겼다.

이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거북이와 용이 살아 있는 듯 생동감 넘치는 조각 기법을 보여 고려 건국 초기의 역동적이고 웅장한 풍조를 반영하고 있다. 탑비는 광종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 김정언(金廷彦)에게 비문을 짓도록 했으며, 최고의 장인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진영을 조성하고 승탑과 한 쌍으로 건립하도록 했다.

비문에 의하면 탑비를 세우고 나서 977년에 공사를 완료하였다. 현재의 비신은 재현하여 새롭게 세운 것이고, 원래의 비신은 여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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