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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여주해평윤씨동강공파종택

여주해평윤씨동강공파종택

여주해평윤씨동강공파종택
종목 문화유산자료 (2000년 03월 24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시대 조선후기(1891)
소유 해***
관리 윤***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사곡리 179번지

소개

조선 중기의 문인 윤세주가 경주김씨에게 장가를 들면서 처가가 있는 이 마을에 처음 가옥을 건립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안채와 안채중문간을 겸한 약방채, 사랑중문채와 연못을 갖춘 사랑채, 바깥대문채가 있는 행랑채로 이루어져 여러 채의 건물구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안마당과 안채 바깥마당, 사랑마당, 사랑채 바깥마당으로 구성된 대규모의 주택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청미천의 범람으로 솟을대문과 행랑채가 무너지고, 1963년에 사랑채가 소실되어서 한동안 초석만 남아있었다. 최근에 바깥행랑채와 사랑채를 다시 지었다. 안채의 대청에는 상량문이 남아있는데, ‘辛丑年(신축년)’이란 기록으로 1901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ㅁ’자형의 안채의 건넌방 앞쪽에 있는 툇마루를 통해서 사랑채로 이어지는 통로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남녀의 공간을 구분하여 안마당과 사랑마당으로 별도의 공간을 사용하지만,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동선을 배려한 것이다. 또한, 안채와 사랑채의 규모가 크고 누마루까지 갖춘 것으로 보아 상류 주택 임에도 별도의 건물로 사당을 짓지 않고 살림채의 날개 부분에 사당의 역할을 하는 방을 마련하여 조상의 위패를 모신 것도 특별하다. 이처럼 폐쇄적인 듯 보이는 ‘ㅁ’자형의 안채, 독립되고 위계를 드러내는 사랑채를 갖추어 각각 구별된 듯하지만, 긴밀하게 동선을 연결하고 생활 속에서 쓰임새를 중시한 것은 조선 후기 주택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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