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금포고택
소개
안동 금포고택은 1964년에 수리하면서 발견된 암키와에서 "康熙三十年四月日"(1691, 숙종17)의 명문이 새겨져있다. 이와 관련이 있다면 葛菴 李玄逸의 문인인 22세 謹明(1668~1732) 代로 이 집의 조성 시기를 올려볼 수 있다. 이외 기록에서 금포고택의 명확한 조성시기를 뒷받침할 자료가 부족하다. 다만,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고문서 자료를 통해 19~20세기에 걸쳐 금포고택의 가세가 확장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건축구조는 '□'자형의 몸체에 전면 양단을 좌우 각 1칸, 1.5칸씩 확장하였다. 사랑채와 중문간채로 구성한 정면의 칸수는 8칸이나 실제 간살규모는 6칸 반이다. 좌로부터 사랑마루와 사랑방, 중문, 고방, 부엌, 정자방을 차례로 배치하였다.
금포고택은 자연석 기단을 안채는 두벌대로, 사랑채는 네 벌대로 쌓았다. 강회 마감한 기단 위에 막돌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운 홑처마 장혀 수장집이다.
상부가구는 3량가로 짰다. 안대청 중앙의 대들보는 청방간과 다르게 만곡재의 높이를 이용하여 대공없이 대량위에 얹고 상부를 벽으로 막았다.
옥개부는 전체적으로 안채와 양쪽 측면의 익랑채, 전면의 중문간채가 3단으로 중첩되는 서산각 지붕으로 꾸미고 추녀는 차리지 않고 맞배지붕의 단차를 활용하여 합각을 꾸민 솜씨와 사랑채의 맞배지붕을 높게 올려 사랑공간의 격을 높인 역동적인 건축 조형미를 보인다.
고택 명칭은 임정한(1825~1884)의 호 '금포'에서 유래된 것이다. 금포 임정한은 시문에 능하여 많은 자료를
남겨놓았고, 현재 해당 자료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있다
금포고택은 정확한 조성연대를 파악할 수 없으나 대체로 19세기 건물로 추정하며 몸체 전면 양단을 늘린 행간 확장형 '뜰집'에서 보이는 서산각 지붕의 입면 의장적 요소와 지붕 가구의 연결구조를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로 판단되어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