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관현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소개
<서초 관현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나무로 조성되어 도금된 상태이며, 보관, 왼손, 그리고 등의 장방형 마개를 제외한 전체가 하나의 목재로 제작되었다. 보살상은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시무외인을 지은 것으로 보아 주존의 관음보살상으로 판단된다. 조선 후기의 관음보살상은 아미타삼존의 좌협시이거나, 주존으로 제작되었는데, 좌협시일 경우 왼팔을 위로 들어 시무외인을 결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독존일 경우 오른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도상학적 판단은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의 “觀音造成祝願榜” 기록과 일치한다.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해 1637년 6월에 조각승 인일(仁日)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봉안처는 명기되어 있지 않다. 다만, 발원문의 “延豐縣監李尹兩位”의 기록으로 보아 연풍현(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소재 사찰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발원문의 연풍현감 “李尹”은 ?선생안?의 李玧(재직: 1632-1637)으로 판단된다.
조각승 仁日은 1610년 10월에 여주 신륵사의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제작하였고, 만력 3□년(1602-1611)에 현재 광주 수도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좌상을 조성하였으며, 관현사의 보살상은 조각승 인일의 세 번째 발견작이다. 인일이 만든 불상들은 턱과 볼에 풍부한 양감이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깊이 파인 인중 표현은 동시대 다른 조각승들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또한 삼각와가 움푹 들어가 있고 대이륜이 양각으로 강조된 귀의 표현도 인일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서울 관현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1637년 6월 조각승 인일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래의 봉안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연풍현감’ 기록으로 보아 연풍지역 사찰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작품은 조각승 인일이 제작한 2건의 불상을 이은 3번째 발견품이며, 임진왜란 직전과 직후의 조선 조각계를 연결해주는 주요 조각승의 작품으로서 의의가 크다. 임진왜란 직후 활동하기 시작한 소수의 조각승 중 하나인 仁日의 후반기 작품 경향을 알 수 있다는 데에서 학술적 중요성이 있으며, 이 작품 사례를 통하여 인일이 경기도 남부에서 충북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에서 활동하였을 가능성도 확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