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서계박세당사랑채
서계박세당사랑채
소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고 저술 활동을 하던 곳에, 후손들이 건립한 것이다. 박세당은 40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이곳에서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그의 대표적인 농학서 『색경』을 저술했다. 이 가옥은 본래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규모 있는 사대부 주택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바깥사랑채만 남아있다. 지붕에는 추녀를 설치하여 사방으로 서까래를 배치하는 팔작지붕으로 만들었으며, 남쪽으로 돌출된 누마루의 지붕은 사랑채의 용마루에서 내림마루를 따라 내려와 우진각의 형태로 마무리 되었다.
현재 이 집은 집 앞 어귀에 서 있는 은행나무와 계류를 따라 세워진 정자, 그리고 학당 터 및 그 뒤의 영당과 묘택 등과 함께 일곽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의 남측으로 약 10m 정도 떨어져 수락산에서 내려오는 계류가 있는데, 계류주변에는 궤산정, 청풍정 등 서계 박세당이 머물던 당시의 정자와 서당 터가 남아있어 조선시대 은거 선비의 사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국가유산/서계박세당사랑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저자 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