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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사자루

사자루

사자루
종목 문화유산자료 (1984년 05월 17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시대 1824
소유 국가/부여군
관리 부여군청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

소개

사자루는 부소산 서쪽 봉우리 정상, 곧 달을 보내서 ‘송월대(送月臺)’라 불리는 봉우리에 있다. 이곳은 해발 106m로 부소산에서는 가장 높아서 동으로는 계룡산, 서로는 구룡평야, 남으로는 성흥산성, 북으로 울성산성과 증산성 등이 보여 전망이 아주 좋다. 아마 백제 시대에는 망루가 있어서 부소산성의 서쪽 장대 구실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자루는 1919년 당시 부여군수인 김창수가 주도하여 임천 문루인 배산루(背山樓)를 옮겨 지었고, 1990년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땅을 고르다가 금동불(일명 정지원명 금동불)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사자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의 건물로 1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웠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익공 계열로 익공과 익공 사이에 화반 대공을 설치하였다.

한편, ‘사자루(泗泚樓)’ 편액은 기미년(1919) 5월에 고종의 아들인 의왕(義王) 이강(李堈)공이 썼고, ‘백마장강(白馬長江)’ 편액은 조선 말기 명필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썼다.

참고로 사자루가 사비루로 불리었던 이유는 현판의 글씨중 ‘泗泚樓’를 ‘泗沘樓’로 잘못 읽은데서 비롯됐다.

이런 혼동의 시초는 『삼국유사』에 부여를 ‘泗沘’, ‘泗泚라 혼용된 데서 비롯되어 현재까지 이어진 듯하다. 그런데 泗沘는 배’로 해석되는데, 泗는 新·東·赤의 의미로 ‘所’와 같고 沘는 伐·佛·火·夫里와 같이 ‘넓은 들판’이나 ‘마을’을 의미하니, 결국 부여의 별칭인 ‘所夫里’와 같은 뜻이다.

그래서 2002년 1월 3일 문화유산자료 명칭변경이 받아들여저 ‘사비루(泗沘樓)’를 ‘사자루(泗泚樓)’로 명칭변경하고, 사자루 현판을 교체하였다.

(출처 : 부여군청 부여문화관광 홈페이지 buye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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