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부산포진_해유문서
부산포진 해유문서
소개
부산포진 해유문서(釜山浦鎭 解由文書)
규모 : 가로 53cm, 세로 5cm
재료 : 한지(韓紙)
시대 : 조선말기(1887년)
이 해유문서(解由文書)는 고종 24년(1887년) 부산포진(釜山浦鎭)의 첨절제사(僉節制使 : 약칭, 釜山鎭僉使) 구계(九溪) 박기우(朴起羽)가 후임자(後任者)와 임무교대(任務交代)시 각 공해(公해)와 시설, 병선(兵船)과 병기(兵器)의 종류와 수량, 군대의 편성(編成) 및 인원 수(數) 을 기록하여 넘겨주는 인수인계(引受引繼)를 위한 증빙서류(證憑書類)인데, 박(朴) 첨사(僉使)는 고종 24년(1887년) 윤(閏)4월7일에 제수(除授)되어 동년 12월에 교체(交替)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지 근무기간은 약 4개월여이고, 재임(在任)시 부산진 군영(軍營)의 실상이 낱낱이 적혀 있으며 행부사(行府使), 행좌수사(行左水使), 좌랑(佐郞), 정랑(正郞), 참의(參議)의 결재(決裁)도 남아 있어 조선말기 지방행정(地方行政)의 특수성과 지방군대의 관리 및 병기(兵器), 군수(軍需)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요긴한 사료(史料)이다. 조선시대 각 지방 기관의 물품수납 지출 등을 관장하는 관원이 이에 관한 장부를 신임 관원에게 넘겨 줄 때에는 이를 호조(戶曹)에 보고하고 호조에서 이 사실을 조사해서 결점이 없으면 그 책임을 벗겨주는 법전상(法典上)의 제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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