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와 이형상 유품
소개
병와 이형상(1653∼1733)은 효령대군의 10대손으로 숙종 6년(168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덕유산에 도적이 많아지자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추천되어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도적을 평정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영조 3년(1727)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영천에 홍연정을 세워 학문에 열중하였다. 이듬해 가선대부가 되고 후에 한성부윤에 이르렀다.
병와 이형상 유품에는 인장 23점, 호패 9점, 거문고 1점, 화살 9점, 갓끈 5점, 관자 4점, 홀 1점, 옥피리 1점, 칼 2점, 표주박 2점, 벼루 1점, 추구통 1점 등이 있다. 인장 중에는 그의 이름과 호로 된 것들이 있고, 후손의 인장도 상당수 있다.호패는 그가 문과에 급제한 해에 발급된 것이며 후손들의 것이 다수 보관되어 있다. 거문고는 그가 제주목사로 있을 때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인이 한라산 백록담에서 저절로 말라죽은 박달나무로 만든 것으로 그의 선정을 기려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거문고에는 서문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홀은 상아홀로서 그가 관복을 입을 때 손에 들었던 것이다. 옥피리는 일부 파손되어 두 토막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그가 평소에 애용하던 것으로 악학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었음을 보여준다. 곡도와 은장도 2종 중 곡도는 장도로 길이 67.8㎝, 폭 3㎝, 자루 길이 12.3㎝가 되는 것으로 이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장도형식의 변천을 잘 보여주고 있다. 표주박은 허리에 찰 수 있게 고리를 달아 끈으로 매게 되어있고 벼루는 흑색의 옻칠함에 넣어져 있다. 이외에도 갓끈과 망건줄을 꿰는 관자 등이 있는데, 특히 그와 후손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갓끈과 관자의 재질은 당시의 재위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