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겸 목사 이수일유애비
소개
병사겸목사 이수일유애비는 이수일*이 임진왜란으로 2차례의 큰 전투를 겪어 폐허가 된 진주성을 보수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고을을 잘 다스려 준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진주민들이 병사겸목사 이수일이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 세운 빗돌이다. 비문은 병사겸목사로서 진주와 진주성을 잘 다스린 공적을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 끝나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을 진주성으로 옮기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진주목사를 겸직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한 사실을 비제(碑題)의 ‘병사겸목사’라는 관직명을 통해 증명하고 있어 조선중기 지방제도 연구 뿐 만 아니라 조선 중기의 비석양식을 연구하는데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비석은 이수일이 임기를 마친 다음해인 1606년에 세웠다. 빗글은 하수일이 짓고, 조겸*이 글씨를 썼다.
* 이수일(李守一, 1554~1632):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 시호는 충무(충무)이다. 1583년 무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경상우병사겸진주목사가 되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서 선무공신과 진무공신에 올랐고 계림군에 봉해져 형조판서에 올랐다. 사후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하수일(河受一, 1553~1612) : 호 송정, 37세에 사마시에 입격하고 선조24년(1591)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에 올랐다. 촉석루의 기문과 덕천서원 세심정기, 단성향교성전기, 수우당명을 지었다. 문집으로 송정집(松亭集)이 전한다. *조겸(趙㻩, 1569~1652) 본관은 임천, 호는 봉강, 효행으로 참판직을 받았으며 창주 하증, 부사 성여신과 함께 진양지 편찬에 참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