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백자청화_성화3년_명_황수신_묘지
백자청화 ‘성화3년’ 명 황수신 묘지
소개
황수신(黃守身, 1407~1467)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좌찬성, 우의정, 영의정 등을 두루 지냈으며,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황희(黃喜)의 아들이다. 2012년 황수신 묘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백자청화묘지석이 출토되었다.
묘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무덤의 위치와 좌향(坐向) 등을 적어 무덤에 묻는데, 돌이나 도자기로 된 지석을 많이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자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사각 도판에 음각 또는 청화, 철화로 글을 썼다. 특히 청화백자 지석은 왕실의 친인척과 정3품 이상 당상관이 사용할 수 있었다.
황수신의 묘지석은 모두 4장인데, 3장에만 청화로 글이 쓰여 있고 마지막 장은 내용 없이 받침석으로 사용되었다. 유약과 태토 역시 매우 깨끗한 편은 아니며, 청화 발색도 옅고 비교적 어둡다. 유색은 전체적으로 담청의 회색빛이 도는데, 백자를 굽는 과정에서 산화되어 일부가 옅은 갈색을 띠고 있다. 유약이 부분적으로 시유되지 않은 곳도 있는데, 유약이 없는 면의 글자는 푸른빛이 아닌 원래 청화안료(코발트) 색인 짙은 회청색을 띤다. 특히 다소 검은색의 청화발색과 안료의 뭉침 현상은 세조연간 토청(土靑;청화안료) 개발에 힘썼던 정황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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