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김영원 자료 일괄
소개
독립유공자 삼혁당 김영원(1853~1919, 애국장) 일괄자료는 1877년부터 1919년까지 작성된 것으로, 김영원 선생의 유림활동, 동학참여, 천도교 교육활동, 그리고 천도교 지도자 활동에 이르는 1919년까지의 자료로서, 소지, 망기, 차첩, 임명장, 수업증서, 청원서 등 고문서 30건과 천도교인 인명부, 삼화학교 교과서 등 성책류 6건, 전체 36건이다.
김영원(金榮遠, 1853∼1919)은 본관 경주, 자 화경(化京), 호 삼혁당(三革堂), 도호 원암(源菴)이며, 생전에 김두희(金斗熙), 김병옥(金秉玉), 김병원(金炳遠), 김병희(金丙熙)라고 불렸다. 1919년 3ㆍ1 만세운동 당시인 ‘1919년 3월 2일 운암면 지천리 천도교 교구실에서 전교사 한준석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매를 전달받아, 같은 날 운암면 입석리, 선거리, 학산리 일대에 게시’한 것으로 투옥되어 옥사한 인물이며, 1991년 건국훈장(建國勳章) 애국장(愛國章)에 추서되었다.
김영원은 1853년에 태어나 가학을 바탕으로 과거 준비를 하였으며, 1878년과 1879년에 무성서원 도내색장(道內色掌)과 도내장의(道內掌議)에 임명되었으며, 1879년 사직대제 제관으로 차정되는 등 유림으로 활동하였으며, 1882년 즈음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선거리 시목동에 삼요정(三樂亭)을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1873년경 해월 최시형의 임실포교시 동학을 처음 접하였고, 1889년에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삼례취회, 보은취회에 참여하였고, 1894년 도접주로서 백산대회에 참여하였다. 동학의 패퇴한 이후 회문산에서 6년간 은거하기도 하였는데, 1906년 천도교 임실교구장, 전주 창동학교, 청웅 삼화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독립유공자 김영원 일괄 자료>는 독립유공자의 행적을 조명하고 임실지역에서 유림활동 및 동학에서 천도교로 이어지는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어 역사적·지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