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금호리백비
금호리백비
소개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인 박수량 선생의 청백함을 널리 알리고자 세운 비로, 그의 묘 앞에 자리하고 있다.
박수량(1491∼1544)은 중종 9년(1514) 과거에 급제하여 승정원 정자를 거쳐 중종 17년(1522)에는 지평이 되었다. 여러 관직을 두루 맡아보다 좌찬성과 호조판서에까지 이르렀으며, 이후 중추부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어 64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었다. 38년 동안 벼슬직에 있으면서 어진 다스림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고, 주세붕과도 깊이 교류하는 등 학자로서도 존경을 받았다. 또한 너무도 청백한 사람이라 초상마저 치를 수 없어 정부에 요청하여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한다. 왕은 그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한 비를 세우라고 명하였는데, 맑은 덕을 나타내기 위해 한 글자의 비문도 새기지 못하도록 하여 ‘백비(白碑) ’라 불리게 되었다.
비는 비교적 널찍한 사각받침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비몸의 윗면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비문이 없는 비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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