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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금영_측우기

금영 측우기

금영 측우기
종목 보물 (1971년 12월 21일 지정)
분류 유물 / 과학기술 / 천문지리기구 / 천문
시대 조선 헌종 3년(1837)
소유 국***
관리 기***
소재지 서울 동작구 여의대방로16길 61 (신대방동,기상청)

소개

‘금영 측우기(錦營 測雨器)’는 조선 시대 충남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錦營]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1915년 경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 1859~1918)가 국외로 반출한 뒤 1971년 일본에서 환수되어 서울 기상청이 보관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측우기를 제작해 전국의 감영에 보냈기 때문에 여러 점이 만들어졌으리라 예상되지만, 지금은 ‘금영 측우기’만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는 조선 세종 대에 처음 만들어진 후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헌종 3년(1837)에 만들어진 이 측우기가 유일하다. 『조선왕조실록』세종 23년(1441년) 8월 18일자 기록에 의하면 서운관(書雲觀, 기상관측 기관)에 대(臺)를 설치해 비를 받아 강우량을 측정했다고 하며, 이듬해 1442년 5월 8일에 측정방식이 미진해 다시 원칙을 세웠으며, 이때의 원칙대로 만들어진 것이 ‘금영 측우기’ 이다.

‘금영 측우기’의 제작시기와 크기 등에 대해서는 중단의 바깥 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통해 확인된다. 명문에 의하면 이 측우기는 1837년(헌종 3년)에 만들었으며 높이는 1자(尺) 5치(寸), 지름 7치, 무게 11근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중‧하단 총 3개의 금속기로 구성되었으며 미세하게 상부가 넓고 하부가 좁아 서로 끼워 맞추도록 하였고 접합부는 대나무 마디처럼 만들어 기형(器形)의 변형을 막고자 했다.

'금영 측우기'는 1837년에 제작되었으나 실물 크기가 세종 대 측우기 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제작시기와 연원이 명확할 뿐 아니라 농업을 위한 과학적 발명과 그 구체적인 실행을 증명해주는 유물로서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

(참고)

* 측우기 중단의 명문: 금영 측우기는 높이가 1자 5치, 지름은 7치, 도광 정유년(1837)에 만들었고 무게는 11근이다.(錦營/測雨器/高一尺五寸/徑七寸/道光丁酉製/ 重十一斤)

* 측우기 바닥면의 명문: 입번은 통인, 급창, 사령이 담당함(入番通引/及唱/使令/次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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