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 때 고승인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 798-868)의 탑비(塔碑)이다. 현재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받침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머릿돌 앞면 가운데에는 “쌍봉산고철감선사비명(雙峯山故澈鑒禪師碑銘)”이란 두 줄의 전액(篆額)이 새겨져 있다.
철감선사 도윤은 한주(漢州) 사람으로 825년(헌덕왕 17) 당(唐)나라에서 유학한 뒤 847년(문성왕 9)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귀국하였으며, 그 후에 왕위에 오른 경문왕을 불교에 귀의하게 한 명승이다. 868년(경문왕 8) 71세의 나이로 쌍봉사에서 입적하자 경문왕은 ‘철감(澈鑒)’이란 시호(諡號)와 ‘징소(澄昭)’라는 탑 이름을 내렸다.
탑비의 조각은 장식적이면서도 힘찬 기세를 지녔다. 특히 받침돌을 디디고 힘찬 모습으로 앉은 거북받침의 자세라든지, 오른쪽 앞발 끝을 웅켜쥔 모습은 형식적 표현에서 벗어난 새로운 수법이다.
머릿돌은 용과 함께 구름무늬를 두루 새겼으며, 윗면 세 곳에 불꽃에 싸인 화염보주(火焰寶珠)를 새겼는데 현재 한쪽은 없어졌다. 탑비의 건립연대는 선사가 입적한 868년에서 머지 않은 때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