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택은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과 관련된 집으로 성삼문의 외손자인 엄찬이 살았던 집으로 1676년 전까지 성삼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병자사화 당시 성삼문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처형되어 성삼문의 둘째딸(효옥)이 이곳으로 와 부친의 제사를 지내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약간 높은 대지에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서쪽을 바라보도록 하였는데, 안채를 ’⊓‘자로 놓고, 그 앞에 행랑채를 ’−‘자로 놓아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안마당은 외부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안채의 큰 마루인 대청은 탁 트인 공간이므로 내부는 넓게 느껴진다. 안채 큰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은 안방과 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은 건넌방, 출입을 위한 중문을 두고 있다. 행랑채는 헛간과 창고, 작은방을 두고 있다. 이 고택은 충청지역과 경상지역의 건축기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대지의 단차에 의해 안채가 행랑채보다 높아짐에 따라 다락을 가지는 점은 경상지역의 특징이며, 안채에서 돌출된 양쪽 익사의 폭이 다른 점은 충청지역의 특징이다.
*사육신 - 단종을 임금으로 받들려다 목숨을 바친 6명의 인물로 성삼문, 이개,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가리킨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충성과 의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병자사화 - 조선 세조2년(1456)에 성삼문 등이 세조의 왕권 강화책에 반발하여 단종의 복위를 명분으로 세조를 축출하고자 한 사건.(사육신사건) 익사 - 한자는 날개 익(翼)자로 안채의 큰마루를 중심으로 날개처럼 돌출된 부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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