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심정(14714∼1531)의 묘로, 묘역 안에는 그의 아들 심사손, 심사순, 손자 심수경 등 풍산 심씨 가문의 묘 60여 기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심정은 연산군 1년(1495)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화천군(花川君)에 봉해졌다. 중종 14년(1519)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결국 정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경주 박씨의 동궁 저주사건이 드러나서 강서로 귀양을 갔다가 이항·김극핍과 함께 신묘삼간(辛卯三奸)으로 지목되어 죽게 되었다.
심정의 아들 심사손(1493∼152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중종 18년(1523) 비변사낭관으로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워 많은 관직에 올랐다. 심사손의 아들 심수경(1516∼1599)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명종 1년(1546)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명종 17년(1562) 중종의 묘를 옮길 때 경기도 관찰사로 나라에서 쓰던 큰 상여가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지 않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대사헌과 8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청백리에 추천되었고 선조 31년(1598)에 생을 마감하였다.
풍산 심씨 묘 60여 기 중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 4분의 묘와 묘비, 상석 등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