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문신인 최항(崔恒, 1409~1474)은 본관이 삭녕(朔寧)이다. 집현전 학사가 되어 신숙주·박팽년·성삼문 등과 같이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1453년 계유정난 때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었고 이후 영의정이 되었다. 문장력이 뛰어나 외교문서를 많이 작성하였고 서적들을 알기 쉽게 풀이하였다.
최항 선생 묘는 단독으로 안장(安葬)되어 있으며, 부인 달성 서씨(達城徐氏)는 인근에 묘소가 있다. 최항선생 묘소 석물 중 묘역 입구의 묘비(墓碑)와 문인석, 묘표만 15세기의 작품이며 다른 석물들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묘비는 하엽수방부(荷葉首方趺; 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좌) 형태이며, 1479년에 건립되었다. 묘비문은 최항의 처남(妻男)인 서거정(徐居正)이 지었으며, 당대 명필인 성임(成任)이 썼다. 묘비문은 오랜 세월로 풍화가 심해 2003년 새로운 비석을 함께 건립했다. 봉분 옆에 건립된 묘표(墓表)는 하엽수(荷葉首; 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