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18년(1881)에 지은 기와집이다.
본래는 안채와 사랑채·곡간채·뜰·아래채·마부채 등이 있었으나, 구한말에 이 집에 살던 신정식이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불을 질러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의 구조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마루가 달린 건넌방을, 오른쪽에 부엌과 마루가 달린 안방과 웃방이 있다. 앞면 5칸·옆면 4칸의 ㄱ자로 되어있으며,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신형호는 가덕면 인차리 출신 독립운동가로 청주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 위해 독립선언문과 경고문 등을 제작하고 인쇄하는 등 거사준비를 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