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사’는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 857년-?)을 모신 사당이다. 최치원은 869년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다. 879년 중국 당나라 말기의 농민반란 주모자인 황소(黃巢, 820년-884년)에 의해 ‘황소의 난’(黃巢-亂)이 일어나자, 이를 정벌하기 위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황소의 잘못을 규탄하기 위해 지은 글)을 지어 적을 물리쳤던 명문장가였다.
최치원은 신라로 돌아와 정치 개혁안으로 시무(時務) 10여 조(條)를 올렸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은둔하며 여생을 마쳤다.
청성사는 크게 사당과 삼문으로 구성되어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를 가진 초익공(初翼工;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추어 댄 새 날개 모양의 목재) 형식의 건물로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우물 정(井)자 형태로 만들어진 마루 형태]로 그 중앙에 최치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당 입구에는 솟을삼문(솟을三門; 문이 세 칸인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한 단 높게 세운 대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