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 오익(1591∼1671)이 지은 정자로, 과거 시험을 몇 번 보았지만 실패하고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정확하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인 1640∼1650년경으로 추정한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자연 암반 위에 만들었다. 가운데에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방을 놓았으며, 둘레에 난간을 설치하여 연못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방의 바닥은 파손되어 흙바닥이 노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