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읍내의 동쪽 화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이며 가야의 산성으로 생각된다. 험준한 북쪽의 바위산을 등지고 남쪽 봉우리 사이의 넓은 부분을 둘러싼 산성으로 둘레가 2,6㎞이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이 산성이 당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동문·서문·연못이 남아있다.
조선 세종 때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중요성이 인식되어 곽재우가 의병 근거지로 왜병의 진출을 막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수리가 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창녕을 보호하는 진산으로 기록된 사실과 영산·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요충지였다.
※(화왕산성 → 창녕 화왕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