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인 조영복(1672∼1728) 선생의 초상화 2점이다. 조영복은 동래부사, 충청도감사 등을 거쳐 당시 서울의 행정과 법집행을 맡아본 한성부에서 종2품의 벼슬을 지냈다.
2점 중 하나는 사방모를 쓰고 도포차림를 한 반신상으로, 가로 120㎝, 세로 76.5㎝의 크기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모에 관복을 입은 전신좌상으로, 가로 80㎝, 세로 154㎝의 크기이다.
반신상은 화면 오른쪽 윗부분에 이 그림의 내력에 대한 아우 조영석의 글이 적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선생이 영춘 지역에 유배되었을 때에 아우 조영석이 본을 떠 놓았다가, 영조 1년(1725) 선생이 유배를 마치고 조정에 돌아온 후 완성한 것이다. 이 때 화원 진재해에게 따로 관복 차림을 그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전신상으로, 그린 사람이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복장에서만 차이가 날 뿐 거의 동일한 기법을 보인다.
즉, 두 점 모두 얼굴과 몸을 약간 왼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반신상은 두 손이 밖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조선 초상화 중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관복 차림의 초상화는 연붉은 관복 위에 관대가 있으나 흉배가 없고 얼굴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2점의 그림 모두 18세기 조선 전기의 초상화 유형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아우 조영석이 형의 모습을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낸 일이 당시의 대신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었음이 『승정원일기』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