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기(備忘記)는 국왕의 명을 적어서 승정원 승지에게 전달하는 문서를 말한다. 정조 어필 비망기는 1796년에 정조가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을 파직한다고 친히 어필로 작성한 비망기다. 정조가 가장 신뢰한 신하 중의 한 사람을 파직하도록 한 뜻밖의 문건이지만 『승정원일기』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있고, 비망기 원본도 채제공 후손가에 전해오던 것으로서 실제로 실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조가 파직을 명한 이유는 채제공이 1795년에 좌의정이 된 이후에 정조가 사간원 헌납 유하원(柳河源 1747~?)을 흑산도로 유배하라는 전교를 내리자, 그를 가르친 적이 있던 채제공이 유하원을 두둔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화가 난 정조가 친히 어필로 비망기를 내려 채제공을 파직시켰던 것이다. 이 일로 채제공이 상소를 올려 견책을 청하자 정조는 채제공에 대한 돈독한 믿음이 커서 책망한 말이 지나쳤다며 자신의 사사로운 정을 알아달라는 비답(批答)을 내렸다.
정조가 직접 쓴 비망기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례로 문구 하나하나에 담겨진 정조의 감정과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정조 말년의 원숙한 필체를 살펴볼 수 있어서 서예사적 가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