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균(鄭龍均)의 효행에 대해서는 『모재실기(慕齋實記)』와 「상서문(上書文)」에 잘 나타나 있다. 더구나 정려기를 지은 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은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인(門人)으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간원(司諫院)의 헌납(獻納)을 지냈던 인물이며, 효자 정용균과 같은 지역의 동시대 인물이므로 그가 지은 정려기는 신필(信筆)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리고 정려(旌閭)가 되기까지의 과정 및 그 이후의 세역(稅役) 면제(免除) 관련 사항까지 알 수 있는 다섯 점의 고문서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문화유산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