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문신인 정대년(鄭大年, 1507~1578)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640년(인조 18)에 건립한 비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호는 사암(思菴)이다. 왕명을 받아 권신 윤원형(尹元衡)의 사건을 강직하게 조사하여 명성을 얻었다. 청백리로서 명망이 높았다. 신도비는 묘역 아래에 있는 혁림사(赫臨祠; 동래정씨 사당) 경내의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비신(碑身; 글씨를 새기는 부분)을 세우고 이수(螭首; 용을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를 올린 방부이수(方趺螭首)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수의 앞면에는 용 두 마리가 하나의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고자 다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였고 받침돌에는 복련(覆蓮 ; 연잎 문양)과 당초문(唐草紋 ; 덩굴풀 문양)을 장식하였다. 비문은 노수신(盧守愼)이 짓고 글씨는 오준(吳竣)이 썼으며 전액(篆額 ; 전서체로 비석의 이름을 새긴 부분)은 김광현(金光炫)이 썼다. 비신의 뒷면에는 증손 정양필(鄭良弼)이 신도비 건립 과정과 자손에 대한 글을 짓고 유시영(柳時英)이 글씨를 쓴 추기(追記)가 새겨져 있다. 노수신의 글이 완성되었을 때 바로 세우려 했지만 임진왜란 때문에 건립이 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