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손자인 태안군 이팽수(李彭壽)와 그의 증손 이경인(李敬仁)의 가족 묘역이다. 발굴 조사 결과 모두 회격묘(灰隔墓 ; 관을 땅 속에 넣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진 무덤)에 외관(外棺)과 내관(內棺)을 사용한 이중의 구조였다. 이팽수의 봉분에서는 백자명기(白磁明器) 10점이, 부인의 봉분에서는 청화백자묘지석(靑畵白磁墓地石) 7매, 백자명기 2점이 출토되었다.
이팽수의 묘역은 부인 안산 김씨(安山金氏)와 함께 매장된 쌍분(雙墳 ; 두개의 봉분)의 형태이다. 양 봉분의 중앙에는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를 세웠는데,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1618년(선조 30)에 건립하였다. 하단에는 문석인 1쌍을 조성하였는데, 보편적인 양관조복형(梁冠朝服形 : 머리에는 양관을 쓰고, 조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이다. 이경인의 묘역은 부인 남양홍씨(南陽洪氏)와 합장한 단분(單墳 ; 하나의 봉분)의 형태이다. 묘표는 원수방부형으로 1696년(숙종 22)에 건립하였다. 하단에는 망주석과 문석인을 각 1쌍씩 조성하였다. 문석인은 양관조복형으로 얼굴표현은 준수하나 신체표현이 평면적인 17세기의 전형적인 조각 양식을 보인다.
이 묘역은 왕실 종친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가족 묘제의 문화가 발달한 경기 지역의 우수성을 살필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