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현종 때 문신인 강흡(1602∼1671)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강흡은 인조 8년(1630)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세마부위란 벼슬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중국 청나라에 무릎을 끓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당시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추앙 받던 정양·심장세·홍석·홍우정 등과 어울려 공론을 벌이며 자연을 벗삼아 지냈다.
이 건물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5년(1679)에 세웠고 그 뒤 1938년 다시 고쳐 지었다. 규모는 앞면 2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특히 이오당(二吾堂)이란 이름은 ‘낙오천(樂吾天), 종오년(終吾年)’ 즉 자연을 즐기다가 생을 마친다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