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명현(己卯名賢)인 음애(陰崖) 이자(李耔, 1480∼1533)는 본관이 한산(韓山)이며, 이색(李穡)의 후손이다.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뒤 은거하여 학문을 닦으며 남은 생을 보냈다.
음애 이자 묘역 가장 높은 곳에는 이자의 아버지인 이예견(李禮堅) 묘가 있으며, 그 아래에 이운(李耘), 이자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자의 묘는 초취(初娶) 의령남씨(宜寧南氏), 후배(後配) 인천채씨(仁川蔡氏)와 합장되어 있으며 봉분은 쌍분(雙墳)으로 만들어져 있다. 봉분 앞쪽에는 사초(莎草)가 무너지지 않도록 장대석을 설치해 놓았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석상, 향로석이 놓여 있으며, 그 앞에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은 문인석이 있다.
이자 묘의 동쪽에 있는 묘표는 개석방부(蓋石方趺; 지붕돌과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로 1876년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