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대의 학자 윤증(尹拯, 1629~1714)이 쓴 서첩이다. 윤증은 본관이 파평, 자인(子仁)이며 호는 명재(明齋) 또는 유봉(酉峯)이다. 17세기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으며, 18세기의 대학자이자 명필로 이름난 인물이다.
표지를 넘기면 안쪽에 ‘유봉’이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19장에 걸쳐 글씨를 썼는데 3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범질(范質)의 「자제계(子弟戒)」를 행서 소자로 썼고, 두 번째는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전반부를 행초서 중자, 후반부를 해서 중자로 쓴 것이다. 세 번째는 소옹(邵雍)의 군자음(君子吟), 주돈이(周敦頤)의 졸부(拙賦), 장식(張栻)의 자수명(自修銘) 등을 해서 중자로 썼다.
이 필첩은 그의 부친 윤순거, 아우 윤문거, 윤선거 가문의 서풍을 알려주는 서예작품으로 의미 있는 서첩이다. 각 작품마다 부친 윤순거와 윤순거의 외조부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서풍을 확인할 수 있어서 부친의 서풍을 따른 윤증의 서풍의 바탕에는 성수침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윤증의 필적으로 여러 간찰과 몇몇 시고(詩稿)가 전하였으나 이 서첩처럼 서예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유물은 희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