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문신인 유항(柳巷) 한수(韓脩, 1333~1384)의 묘이다. 1371년(공민왕 20)에 신돈이 물러나자 다시 발탁되어 주요 관직을 지냈다. 시서에 뛰어났고, 초서와 예서에 능한 당대의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묘역은 민통선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청주한씨 가족 묘역으로 한수의 아버지인 한공의(韓公義) 묘와 형제인 한리(韓理) 묘가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한수의 묘역은 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와 합장된 원형의 쌍분(雙墳; 두개의 봉분)의 형태이다. 묘역은 계단식으로 올라가면서 계체석(階砌石; 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을 경계로 3단으로 나뉘었는데, 고려 말기 묘제의 흔적이다. 중단에는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 각 1기씩과 장명등을 설치하였다. 묘표는 둘 다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다. 정면 왼쪽 묘표는 5대손 형윤(亨允)이 중종 때 건립한 것이고, 정면 오른쪽 묘표는 12대 후손이 숙종 때 건립한 것이다. 장명등과 망주석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고, 하단의 상석과 향로석은 최근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문석인은 2쌍을 설치하여 고려 말 조선 초기 쌍분(雙墳; 두개의 봉분)의 묘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유항 한수 묘역’은 고려 말기 묘제의 흔적을 살필 수 있으며, 경기 능묘 문화의 특성을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