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재는 임란시 창의장군 김현룡(金見龍)의 호를 따서 지은 재실이며 재실이 자리한 장동은 수원김씨들이 개척한 마을이라 한다.
재실과 고자채가 ㄱ자형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고자채는 올해 쇄락되어 무너졌다. 재실은 전퇴를 둔 정면 4간, 측면 1간 규모로 평면형은 가운데 마루가 자리하고 좌, 우에 온돌방이 배치된 중당협실형으로 재실건축에서 자주 채택되는 일반적인 평면형이라 볼 수 있다. 좌측 온돌방과 우측 온돌방은 양쪽방이 동일하게 전면과 마루쪽으로 창호를 설치하여 출입동선을 만들었다. 전면 창호는 하부에 머름을 둔 쌍여닫이 세살문이며 마루쪽은 하부에 궁판을 둔 쌍여닫이 세살문으로 전면문보다 높이가 높다. 다만 우측방은 뒤편에 벽장을 설치하였다.
마루는 2간으로 전면은 개방되고 배면만 골판벽에 쌍여닫이 골판문으로 폐쇄되어 있다. 전면에 설치된 퇴는 4간에 걸쳐있다.
기둥은 모두 각주를 사용하였고 납도리에 동자주를 세운 간결한 3량 가구이다. 그리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주고에 비하여 처마를 많이 내밀었다. 그리구 구재(舊材)를 많이 사용한 듯 부재에 헛구멍들이 많았다.
상량문에 「상지삼십구년 임인 이월십육일 신 감주상량간(上之三十九年 壬寅 二月十六日 申 監柱上樑艮)」이라는 묵서로 보아 1902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월동재는 20세기 초기 건물로 건축적으로는 뚜렷한 특징을 지니지 못하나, 지역의 인물사적 측면에 비중을 두어 기념물 성격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