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량문은 구름무늬를 가득 채운 주황빛의 비단 한 폭을 통째로 사용했다. 비단의 앞쪽 가장자리에는 ‘소주직조신서문(蘇州織造臣舒文)’이라는 그루기가 있어 오늘날의 중국 쑤저우에서 수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량문을 짓고 쓴 이는 정조의 최측근이자 남인의 영수로 이름난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다. 당시 채제공의 나이는 70세였는데, 고령에도 불구하고 미끄러운 비단 위에 진한 먹을 능숙히 사용해냈다. 또한, 행서(行書)로 쓴 필치에서는 원숙하면서도 넘치는 기운과 속도감이 느껴진다.
용주사의 사명(寺名) 유래, 현륭원(顯隆園)의 재궁(齋宮)으로서 절을 세운 경위,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바라는 내용이 이 상량문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