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화운사목조여래(아미타,약사)좌상

용인화운사목조여래(아미타,약사)좌상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2006년 06월 19일 지정)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시대 1628
소유 화운사
관리 화운사
소재지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33-1

소개

화운사의 대웅전과 선원(禪院)에 각각 따로 모셔져 있지만, 원래는 삼세불(三世佛)로 함께 만든 불상이다. 삼세불이란 과거불 · 현재불 · 미래불을 뜻하기도 하고, 현재의 공간과 동방, 서방의 세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절에서는 흔히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약사불이, 그 오른쪽에 아미타불이 배치되는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화운사의 두 목조불상도 크기와 인상, 옷차림새와 옷주름이 서로 비슷해 삼세불로서 함께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바닥에 ‘서방불(西方佛)’과 ‘동방불(東方佛)’이라는 먹글씨가 쓰여 있어 각각 삼세불 중의 아미타불(서)과 약사불(동)임을 알 수 있다. 두 불상 모두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엄지와 장지를 맞댄 채 올리고 내렸지만, 손의 방향이 정반대이다.

두 목조 불상의 개금(표면 금칠을 새로 베푸는 것) 때 대웅전의 불상(아미타불) 속에서 시주자(施主者.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의 물질을 베푸는 사람) 이름이 적힌 발원문(發願文; 바라고 원하는 것을 적은 글) 한 장과 경전이, 선원의 불상(약사불) 속에서는 경전과 비단에 싼 향과 오곡(五穀, 다섯 종류의 곡식) 뭉치가 발견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두 불상은 1960년대에 금산사에서 이곳 화운사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정수리와 머리 중앙에 있는 원통형과 반달 모양의 큼직한 상투 매듭 구슬(髻珠), 사각형의 얼굴과 신체 구성, 상체를 뒤로 젖히고 머리를 약간 앞으로 내민 모습, 폭이 넓고 단순한 옷 주름 형태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얼굴 모습과 옷차림새 등에서 비추어 조선시대 17세기 전반에 조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