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효교리 매향비는 돌의 홈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비문이 각자(刻字)되어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석각은 “□□6년 계미 3월 12일(□□六年 癸未 三月 十二日)에 이산(伊山)과 덕풍(德豊)의 승려와 결연 향도들이 축대를 쌓아 비석을 올려놓고 고한다. 성에서 나와 용오리 들머리에 매향을 도감(都監) 승려들이 함께 하였다[□□六年 癸未三月十 二日伊山德豊袈裟 結(緣)香徒□告 城出龍吾里埜頭 埋香庫同].”라는 내용이다. 왼쪽 석각은 “뫼뿌리 사이에 일만(一万)[매향의 숫자로 추정]을 그리고 삼칠(二七)[매향의 숫자로 추정] 많은 나물로 향주(香[會]主)가 미륵 앞에 매향을 하였다[峯巒間一万 二七□□間□富菜(乘) 香(會)主埋香□(彌)勒前].”라는 내용이다
매향은 고려시대로 추측되는데, 비문의 내용에 이산과 덕풍의 지명이 보인다. 이산과 덕풍은 조선 태종 1405년 덕산으로 개편되기 때문에 이산과 덕풍이 공존하였던 시대를 본다면 고려 현종 1018년과 1405년 사이가 된다. 그리고 간지 계미자(癸未字)로 보자면 1043년[계미]~1403년[계미] 사이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400년 사이에 매향하였으며 승려의 개입으로 보아서 고려시대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