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의 7세 때 필적이다. 초기 연잉군(延礽君) 시절(1699.12.24~1721.8.19)인 1700년(숙종 26)에 쓴 것이다. 큰 폭의 장지(壯紙) 한장 반을 붙인 종이에 큰 글자로 ‘송죽(松竹)’이라 썼는데 어린 나이여서 글씨의 한계는 보이지만 필력이 굳세고 당당하다. 궁중의 장황 방식으로 꾸며져 있고, 뒷면 아래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남긴 배관기(拜觀記)와 인장이 찍혀있다. 배관기에는 “영조 7세 때의 어필로 참으로 세상에 드문 귀중한 보배이니 공경히 지키고 보배로이 간직하라[英祖七歲時御筆 眞稀世重珍 須敬守寶藏]”고 쓰여 있다.